이병문 tbnews@hanmail.net
서울시 심야 자율주행택시.
자율주행차와 택시 서비스를 결합한 ‘로보택시(Robotaxi)’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택시업계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서울 252개 법인택시회사가 회원인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이사장 김동완)은 ‘법인택시 자율주행택시 TF(태스크 포스)’를 구성하고 로보택시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제안과 제도 개선 활동에 나섰다고 23일 밝혔다.
서울택시조합은 ”운전자 없이 자율주행으로 운행되는 로보택시가 실용화되면 택시업계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택시산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관계 법령과 제도 개선, 상생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자율주행택시는 서울시가 지난해 9월부터 강남·서초 일대에서 심야 시간대(밤 11시~다음날 새벽 5시)에 시범 운행 중이다. 서울시는 심야 자율주행 택시의 운행 지역과 시간대를 확대하고 차량 대수도 늘리며 현재 무료 운행도 올해 유료화할 계획이다.
서울시 심야 자율주행택시의 이용 건수는 하루 평균 17.5건으로 운행 중 한 건의 사고도 보고되지 않았다. 자율주행 택시 호출앱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바일 측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이용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현재 완전 무인 로보택시가 운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가 애리조나주 피닉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와 샌프란시스코, 텍사스주 오스틴 등 4개 지역에서 로보택시 사업을 하고 있다. 웨이모는 오스틴을 제외한 세 도시에서 매주 20만회 이상 승차를 처리한다.
중국에서는 이미 무인 자율주행 택시가 일상이 됐다. 인공지능(AI) 기업 ‘바이두’가 베이징, 상하이, 충칭, 선전, 우한 등 중국 10여 개 도시에서 로보택시 사업을 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누적 주행거리가 1억5000만 km, 서비스 제공 건수도 1000만 건을 넘어섰다.
국내 로보택시의 기술 수준은 미국·중국에 비해 다소 뒤처진 상황이다. 미국·중국이 완전 무인 운행하는 레벨4 수준인 데 비해, 시험운전자가 탑승해 일부 개입하는 레벨3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조만간 미국·중국처럼 완전 무인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국내 로보택시의 대중화, 즉 많은 사람이 서비스를 체감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앞으로 4~5년 정도로 예상한다. 로보택시 초창기에는 승객들이 안전에 불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자율주행 기술이 일상에서 자리 잡으면, 자연스럽게 안전하다는 인식이 확산돼 빠르게 실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택시업계는 로보택시 시대가 점점 다가오자 큰 위협과 위기를 느끼고 있다. 로보택시 시대가 도래하면 기존의 택시운송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결국 상당수 택시들이 소멸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택시업계는 자율주행택시가 기존 택시가 받는 각종 규제를 받지 않고 사실상 면허 없이 ‘무면허 영업’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택시운송시장을 불법으로 잠식하고 운수종사자의 일자리를 빼앗으며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보택시가 현재는 대다수 국민에게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 없어서인지 전국적으로 조직적인 택시업계의 반발은 아직 없는 편이다. 다만 서울택시조합이 TF를 구성해 수시로 회의를 갖고 자율주행차 기술 동향과 대처방안을 논의하면서 정부의 자율주행차 정책에 업계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건의 등 대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택시조합은 자율주행택시 확대가 택시업계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자율주행택시를 확대하더라도 기존 택시 면허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조합은 자율주행택시 사업에 기존 법인택시 면허 활용과 택시업계의 참여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최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전달했다.
더불어,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투명하게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거버넌스 체계 정립 등 상생방안을 요구했다. 조합은 조만간 자율주행차 관련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용역도 추진한다.
김동완 조합 이사장은 “현재 법인택시는 고질적인 인력난으로 가동률이 30%에 불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자가용 유상운송인 자율주행택시를 늘리면 택시운송시장을 잠식하고 공급과잉을 심화시켜 기존 택시산업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택시업계는 로보택시뿐만 아니라 최근 수요응답형 대중교통(DRT; Demand Responsive Transport)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DRT가 택시와 비슷한 역할을 하면서 택시운송시장을 잠식하고 있어서다.
로보택시 등 달라진 환경에 따라 기존 택시업의 체계 개편이 불가피한 만큼, 관계 법령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도로교통법을 비롯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택시발전법, 자율주행을 위한 필수적인 각종 데이터 수집과 관련 개인정보보호법, 그리고 사고 발생시 보험업법 등에 대한 광범위한 관련 법령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국내 택시운송업은 자율주행차 기술의 발전으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택시업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생존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부터 서둘러 대책 마련을 강구해도 늦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병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