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월급제로 명명되는 주 40시간 이상 택시 소정근로시간의 전국 확대 시행이 결국 2년 유예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19일 오후 교통법안심사소위를 열어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개정안을 심의한 뒤 이 같은 유예안을 대안으로 의결했다.
유예 법안은 국토위 전체회의 및 본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 이송 및 공포 등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야가 2년 유예에 합의한 만큼 이미 이 제도를 시행 중인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서 행정적으로 시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택시발전법 개정안은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해진 택시 소정근로시간을 원칙으로 하되, 노사 간 합의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신설한 것이다.
개정안이 발의된 배경은 국토교통부가 현실적으로 전국 확대 시행에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했고, 택시 노사(전국택시연합회·전국택시노조연맹·전국민주택시노조연맹) 모두가 반대해서다. 우리나라 노사관계에서 노사가 함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특정 정책에 반대하는 건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택시발전법(제11조의 2)에 따르면 일반택시 운수종사자의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강제하고 이에 따른 월급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이른바 ‘택시 월급제’다.
택시 월급제는 택시기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기존 사납금 제도를 폐지하고 최저 임금(월 200만원 이상)을 보장하려는 취지다. 2021년 1월 서울에서 우선 시행됐고, 올해 8월 20일 전국 확대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택시 월급제는 서울에서 우선 시행한 결과, 당초 입법 취지와 달리 일반택시운송사업의 경영 및 운수종사자 근로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택시기사들은 우선 종전에 비해 일한 만큼 수입을 가져가지 못하는 게 불만이다. 사납금제는 정해진 액수를 매일 회사에 납부하고 일정한 월급을 받으며 나머지 수입을 모두 가져갈 수 있어 높은 영업 성과를 담보할 수 있었다.
반면, 월급제는 동일한 운송수입을 올려도 초과 운송수입에 대해서는 과거처럼 모두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성과급으로 분배받기 때문에 월급(수입)이 사납금제에 비해 훨씬 낮아진다.
운송수입을 많이 올리는 기사들은 월급이 인상되면서 건강보험료 등 4대 보험 부담료도 같이 올라가서 더욱 큰 불만이다. 사납금제에서 사납금 초과금은 소득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돼 기사들은 해당 부분만큼 이득을 볼 수 있었고 4대 보험 부담료도 적었으나 월급제는 버는 만큼 부과된다.
사실상 실질 임금이 낮아지는 것이다.
물론 수입이 많으면 세금이나 보험료도 많이 내는 게 당연지사겠지만 그동안 택시기사들이 사납금제에 익숙해져 있는 데다 누구나 그렇듯이 세금이나 보험료를 더 낸다는 것은 억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고질적인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택시기사들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회사도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특히 불성실한 기사가 운송수입을 올리지 못해도 일정액의 월급을 꼬박꼬박 가져가는 모습을 보면 큰 상실감을 갖게 된다. “게으른 사람만 좋은 제도”라는 불만이 싹트게 되고, 결국 성실한 기사들도 근로의욕이 떨어져 일을 그만두거나 게을리하게 된다.
회사는 운송수입 상관없이 고정급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럴 경우 택시발전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불성실 기사를 제재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일단 기사가 차를 갖고 나가면 감독하기가 어렵다는 게 회사 측의 얘기다.
택시 기사들 중에는 고령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주 40시간 이상 근무가 어려운 기사들도 꽤 있다. 이들은 파트타임 근무를 원하고 있으나 원천적으로 차단돼 직업 선택과 계약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가 나온다. 회사도 파트타임이나 격일, 주말 근무 등 다양한 근로시간과 임금체계가 금지돼 경영상 자율성을 발휘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택시회사 매출은 떨어지고, 이는 다시 임금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로 월급제를 먼저 시행 중인 서울은 기사들이 그만두는 사례가 급증하며 기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2020년 코로나가 발발한 후 서울에선 법인택시 기사 상당수가 배달·택배 업종으로 옮겼다. 지난 6월 말 기준 서울의 법인택시 기사 수는 2만52명으로 월급제 이전인 2019년 12월보다 34% 급감했다. 서울의 법인택시 가동률은 30%대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법으로 정해진 월급제는 정착되지 못하고, 기본급에 택시기사가 올리는 수입에 따라 추가 성과금을 받는 구조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택시 월급제의 도입 취지와는 차이가 있는 사실상 '유사 사납금제'의 형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니 택시기사 공급과 승객 수요가 낮은 지방에서 주 40시간 이상 근무를 강제하면 기사들의 유연 근무가 불가능해 다른 업종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택시회사들도 기사 1명당 고정 급여로 매월 200만원 이상을 지급하면 경영수지를 맞추기 어렵고 폐업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결국 여야는 개정안 처리 대신 국토교통부가 1년 동안 전국 택시업계 운영 실태를 조사하고 종합적인 택시발전 대책과 방안을 마련한 뒤 이에 대해 논의하는 등 전국 확대 시행을 총 2년 유예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