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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다치면 사비로 합의"…울며 겨자먹기 마을버스 기사들
  • 연합뉴스
  • 등록 2024-01-16 20: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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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운전' 강조 속 시내버스 이직 위해 무사고 필요…"악용 손님도"
  • "회사는 보험수가 오를까 묵인"…전문가 "관행·벌점제도 개선해야"

서울 마을버스(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 관계 없음)

(서울=연합뉴스) 김정진 기자 = 서울에서 마을버스를 모는 김모(60)씨는 지난달 '의자에 앉다가 허리를 삐끗했다'는 승객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금 35만원을 건넸다.

 

김씨는 당시 승객이 자리에 앉는 시점에 급제동·급출발·급회전 등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승객 또한 목적지에서 내릴 때까지 별다른 이상이나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회사도 민원을 접수한 뒤 폐쇄회로(CC)TV 확인 끝에 '기사 과실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승객이 경찰에 신고한 탓에 합의금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처럼 마을버스 기사들이 자기 과실이 없는 사고인데도 사비로 합의금을 주며 '제 살 깎아 먹기'를 하는 상황에 몰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급여 등 근로 조건이 더 나은 시내·광역버스로 경력 이직을 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무사고 이력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무사고 이력이 시내버스 기사의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최소 1년 6개월 이상 무사고 이력을 갖춰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기사들의 설명이다.

 

시내버스 기사 채용 시 음주운전·신호 위반·사망 사고 이력 외에 단순 교통사고는 표면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업계에선 '준공무원'이라 불릴 만큼 좋은 근무조건을 갖춘 시내버스로 이직하려는 이들이 많다 보니 무사고 이력이 길수록 유리하다는 생각에 사비를 털어서라도 사고 경력을 남기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작은 벌점도 이직에 지장을 주는 상황에서 승객이 진단서만 가져와도 기사에게 '안전운전 불이행' 벌점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아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지 않는 기사도 많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도 버스 업계나 기사의 애환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종사자들 기대만큼 크지 않은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는 갈수록 안전운전을 중시하고 과거 택시나 버스의 불친절과 과속·난폭운전에 대한 시민 불만이 컸던 점도 근저에 깔려있다. 고객 안전이 최고의 가치인 운수업계에서 기사의 어려움은 묻히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기사들은 심지어 일부 승객이 구조적 문제를 악용해 노선을 바꿔가며 허위 사고를 내고 합의금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7년 전 마을버스에서 시내버스로 이직한 정모 씨는 "마을버스 기사들이 사고 이력이 있으면 시내버스에 입사하기 어려운 걸 알고 악용하는 승객도 많다"며 "직원들끼리 회사 게시판에 '이런 사람은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하지만 손님이 워낙 많다 보니 일하면서 하나하나 신경 쓰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서울 마을버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뉴스 자료사진]
보험수가가 오를까 봐 기사와 승객의 개인적 합의를 묵인하는 사측의 태도 또한 문제를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한 마을버스 기사 박모 씨는 회사가 보험 처리를 꺼려 뒷문 사이로 발을 집어넣은 승객에게 수십만원을 주기도 했다.

 

승객이 버스에 타려는 것을 본 박씨가 곧바로 문을 열면서 문 사이에 발이 끼는 상황까지 가진 않았지만 사측에서는 박씨가 이전에 보험 처리했던 사고를 언급하며 "보험 처리를 두 번까지 해주는 건 어렵다"며 외면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마을버스 운전 종사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수반돼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벌점 제도를 개선하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운전자의 무과실을 증명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교통사고·손해배상법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승객이 다치면 무조건 운전자 잘못으로 보는 관행이 문제"라면서 "억울한 운전자는 벌점 범칙금 부과에 이의를 신청해 즉결심판에서 무죄를 받는 수밖에 없다"고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김현 공공운수노조 산하 민주버스본부 조직국장은 사고 발생 시 보험처리를 하면 벌점이 올라가는 현행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들이 보험 수가가 올라 회사에 재정적 부담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벌점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며 "단순하게 벌점이 몇 점이냐가 아니라 벌점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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