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수연 기자 = 26일 0시를 넘겨 강남역으로 가는 밤길, 자율주행 택시 안에서 모니터를 보니 빨갛게 표시된 차가 뒤쪽에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택시가 깜빡이를 켜고 급하게 끼어드는 상황이 모니터에 표시된 것이다.
본능적인 두려움과 함께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부딪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운전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차가 속도를 알아서 줄이더니 이내 앞차와의 간격이 벌어지자 다시 제 속도를 냈다.
기자는 국내 최초로 심야 자율주행 택시가 무료 운행을 시작한 이날 차에 올랐다.
카카오T 앱을 켜고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 인근의 한 아파트에서 2호선 강남역으로 5km를 갈 택시를 찾으니 화면에 '서울 자율차', '예상금액 0원'이란 표시가 떴다.
서울 자율차 아이콘을 누르고 기다리니 이내 흰색 자동차가 달려왔다.
운전석에 앉은 시험운전자가 화면을 누르자 "자율주행을 시작한다"는 기계 안내 음성과 함께 자동차가 모든 상황을 판단해 알아서 운전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가만히 있는데 핸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꿔 좌회전해 달려갔다.
어느 정도 공간만 확보되면 차와 오토바이가 섞여 달리는 상황에서도 자율주행 택시는 '노련한' 기사처럼 주저하지 않고 차선을 바꿨다. 탑승자 입장에서 불안하게 느껴지는 상황은 없었다.
차가 어린이보호구역에 진입하자 "수동주행으로 전환한다"는 음성과 함께 운전자가 핸들을 잡았다.
비록 심야이고 통학 아동이 다니지 않는 상황이지만 설계된 대로 어린이 안전을 위해 보호구역에서는 수동 모드로 바뀌었다.
서울 자율주행 택시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운전자가 직접 운행하는 방식이다. 도로 폭이 상대적으로 좁고 돌발 변수가 많은 주택가 이면도로에서도 운전자가 운행한다.
어린이보호구역을 벗어나 다시 자율주행 시작 버튼을 누르니 차가 알아서 움직였다.
같은 차로 사람이 운전하는 수동주행과 자율주행 방식을 모두 타 보니, 큰 차이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브레이크나 엑셀 모두 부드럽게 밟아,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를 빼고는 덜그덕하는 느낌도 없었다.
이날 밤 12시 15분께 학여울역 인근에서 출발한 자율주행 택시는 강남역을 찍고 30분이 지난 45분께 다시 처음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다.
카카오T 앱에는 강남역으로 12분가량 소요된다고 안내했으니, 왕복임을 감안했을 때 6분은 더 걸린 셈이다.
황색 점멸등이 켜지면 일단 멈추고, 빨리 가겠다고 무리하게 주행하지 않다 보니 일반적인 이동 시간보다는 더 길어진 듯했다.
첫 승차지점으로 돌아온 뒤, 별도의 비용을 내지 않고 내렸다.
심야 시간이라 강남역까지만 해도 요금 1만원은 나오는 거리였다.
서울 심야 자율주행 택시는 월요일∼금요일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사이 강남 자율주행 자동차 시범운행지구 안에서 출발지와 목적지를 설정해 카카오T로 부르면 된다.
강남구 역삼·대치·도곡·삼성동과 서초구 서초동 일부 지역에서 이용 가능하며, 자율주행 택시 3대가 봉은사로·테헤란로·도곡로·남부순환로·개포로·강남대로·논현로·언주로·삼성로·영동대로 일부 구간을 달린다. 면적은 11.7㎢다.
자율주행 택시 3대는 개조한 '코란도 이모션'이며 서울시는 고장에 대비해 예비차 2대를 마련했다.
4개의 근접 라이다센서, 4개의 원거리 라이다센서, 10개의 카메라를 통해 자율주행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자율주행 택시는 한층 '미래 자동차'에 가까워진 형태다. 국내에 '전격 Z작전'으로 소개돼 인기를 끈 미국 드라마 '나이트 라이더'에 등장하는 말하는 슈퍼카 '키트'나, 여러 차례 영화와 TV 시리즈에 등장한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자동차 '허비'가 실제 구현된 느낌도 준다.
올해까지는 무료 운행이고 내년에는 요금을 받는 방식으로 바뀔 예정이다.
시는 내년 상반기 운행 구간을 논현·신사·압구정·대치동까지 넓히고 차량 대수도 수요와 택시업계 의견, 자동차 수급 여건 등을 고려해 늘려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