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버스 노선 배우다 사고당한 견습기사…대법 "근로자 맞다"
  • 연합뉴스
  • 등록 2022-05-08 07:54:22

기사수정
  • "근로계약서 안 썼고 임금 안 줬어도 시용 근로계약 성립 부정해선 안돼"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전 교육·훈련을 받는 사람도 사용자에 종속된 채 근로를 제공했다면 법적인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한 버스회사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보호급여 결정승인처분 취소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시용기간 제공된 근로 내용이 정규 근로자의 근로 내용과 차이가 있어도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를 위해 근로가 제공된 이상 시용 근로계약이 성립한다고 봐야 한다"며 "제공된 근로 내용이 업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훈련의 성격을 겸하고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판시했다.

 

이어 "시용기간 임금 등 근로조건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자신의 의사대로 정할 여지가 있다"며 "시용기간 임금을 정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시용 근로계약의 성립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되고 단순히 근로계약의 체결 과정 중에 있다고 볼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 회사의 견습기사 A씨는 2015년 9월 마지막 테스트로 감독관의 지시 하에 운행하던 중 급커브 구간에서 버스 추락 사고를 당하게 됐다.

 

A씨는 2018년 2월 이 사고로 제2요추 방출성 골절상을 입었다며 요양급여를 신청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요양 승인 처분을 했다. 이에 회사 측은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이 위법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서의 쟁점은 A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였다.

 

버스회사는 서류심사를 마친 입사지원자에 대해 '노선 숙지→시험운전→취업·근로계약서 작성→시용기간'의 과정을 거쳐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왔는데 A씨는 시험운전 중 사고를 당했으므로 당시 근로자의 지위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폈다.

 

반면 1심과 2심은 A씨가 법적인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 회사에서 정식 근로계약 체결 전 운전기사들이 거치는 통상 1개월가량의 시내버스 노선 숙지 기간에는 승객이 탑승한 상태에서 버스가 운행됐고, A씨는 회사 지시에 따라 정해진 차를 탔다는 것이다. 버스에 본기사(원래의 고정 기사)와 함께 타 지시를 받았고 회사가 지정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A씨의 노선 견습 기간은 실질적으로 버스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아 운전기사로서 근무하는 데 필요한 기본 사항을 습득하기 위한 시용기간으로서 근로기간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경제적으로 우월한 사용자와 종속적인 근로자의 지위에 비춰 A씨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거나 임금을 받은 적 없다는 사정만으로 근로자가 아니라고 봐서는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대법원도 "A씨가 노선 숙지만 하고 직접 운전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이는 버스회사의 이익을 위한 교육·훈련이거나 적어도 피교육자이자 근로자라는 지위를 겸한 채 이뤄진 것"이라며 "버스회사와 A씨 사이에는 시용 근로계약이 성립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